군형법상 추행죄는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이 조항이 없어도 군형법에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조항이 있다. 설령 군형법에 성폭력 처벌 조항이 없어도 일반 형법이나 성폭력특별법과 같은 조항을 적용하므로 성폭력 처벌에 대한 공백이 생긴다고 볼 순 없다. 오히려 성폭력을 처벌하고자 한다면 병사들 간에 입대일 하루 차이로 생기는 기수 문화, 권력차이를 없애는 게 먼저다. 성폭력은 성을 매개로 한 권력 차이가 전제된다. 실제로 병사들끼리 업무 지시하고 복종하는 과정에서 위계가 발생하고 구타, 폭행, 성폭력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동성애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성폭력을 없앤다? 이것은 핀트가 맞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군대의 성소수자 억압 및 박해는 훨씬 더 가시적으로 입증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군형법 92조 6항의 존재가 난민 박해 사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면 이번 사건은 육군 당국이 실제로 92조 6항을 근거로 동성애자들을 반인권적으로 색출하고 구금, 박해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외국으로 난민 신청 인정 결정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사회의 지정성별 남성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모두 군대에 징집된다는 점, 그러나 동시에 군형법은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고 실제로 처벌을 집행한 사례가 있다는 점, 그리고 군복무를 거부할 시 구금된다는 점은 한국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 남성들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이기 때문입니다.
사법정의를 옹호해야 할 법원이 도리어 육군참모총장에게 아부하며 불법의 편에 서 인권을 말살시킨 오늘의 판결은 국민적 공분 속에 폐지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다른 색출 피해자들에 대한 재판도 계속하여 예고되고 있어 현실은 매우 참담하다. 이처럼 이제 성소수자들에게 군대는 안전하지 못하다. 아웃팅 위험에 상시 노출되있던 성소수자들은 이제 아무때나 색출 당해 본인의 사생활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떠안게 되었다. 병역 의무 이행 자체가 전과로 이어질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지나치게 절망하지는 말자.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3번의 판단을 내린 바 있었는데 2002년 결정에서는 2인, 2011년 결정에서는 3인의 반대의견이 있었고 2016년엔 4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에는 지난 5월19일 차기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임명된 김이수 재판관도 있었다. 이렇듯 군형법상 추행죄를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소수의견'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가만히 입을 닥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나중'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하여 군형법상 추행죄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군형법 추행죄가 폐지될 때까지, 나아가 성소수자 인권이 위협받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설치고 말하고 비판할 것이다.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에 있어서, 저는 이것이 절대 군 인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군 인권 문제와 생각의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 동성애자가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습니다. 경찰이 그들을 잡아가 취조하며 '좋아하는 체위는 어떤 것인지' '동성과 관계를 맺은 횟수는 몇 번인지'등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군대 내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영내에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성인과, 합의하에 관계를 맺은 군인이 구속되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군인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A대위의 구속은 미네르바 사건을 연상시킨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여 크게 화제가 되자 검찰은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을 찾아내어 미네르바를 구속기소했다.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법을 악용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A대위 사건에서의 특정한 목적을 뭘까? 육군은 수사관들을 동원하여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에 대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군인 한 명 구속된 것 가지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글을 찬찬히 읽어보길 바란다.
제대 일주일 전쯤, 별 생각 없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헌법재판소 군대 내 동성애 행위 처벌 합헌" 그 잠깐 본 한 줄로 몇 시간 동안 내 사고와 감정은 소화불량이었다. 답답한데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풀어낼 곳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군대에서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정신을 조금 차린 후에, 그래, 커밍아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다. 군대에서 나를 알고 지냈던 이들의 귀에 "야! OO이 게이였데." 라는 가십이 들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 혹은 욕을 할 때, 잠깐이나마 내가 생각나길 바란다.